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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을 에워싼, 작가가 설정한 세계를 천천히 들여다보면 반복되는 잔상을 발견할 수 있다. 이를테면, 엉켜 있는 손, 무언가를 위태롭게 지탱하는 손바닥, 그리고 얼굴의 단편들. 곧바로 주인을 특정할 수 없는 이러한 손과 얼굴은 이름을 지워낸 공간을 상기시킨다. 2024년부터 이어온 ‘No Dress Code’ 연작은 사회가 정해준 역할을 벗어난 혹은 벗어나고자 하는 여러 실루엣과 사물의 배치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들은 주변부에 남겨진 풍경이자 누구나 사회 속에서 겪어보았을 법한 순간들을 드러낸다. 어긋난 자세, 도저히 맞춰지지 않는 행동, 부합하지 못한 흔적들이 중심의 바깥으로 불현듯 삐져나온다.
한국이라는 특정한 시공간에서 출발한 그의 각본은 레지던시 체류를 계기로 반대편에 놓인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에 당도하며 확장된다. 〈Beyond the Rift〉(2025)와 〈Isolated Scene〉(2024)에서 보이는 층층이 쌓아 올려진 건물과 정교하게 다듬어진 자연은 그동안 우리가 익숙하게 마주해온 도시의 형상과 낯설게 닮아 있다. 이방인으로, 모국어를 내뱉지 못하는 자로 선 작가는 언어의 불일치와 그 사이에서 파열하는 어긋남의 감각을 통해 그간의 연작에 또 하나의 창을 낸다. 희멀건 창, 두 개의 창, 안과 밖이 서로를 비추며 뒤섞이는 창과 같은 것들. 영원히 속하지 못할 바깥에서 진행되는 리허설은 어딘가에 적응하기 위한 수많은 습작이자, 끝내 자리에 맞지 못하고 탈락하는 움직임을 담고 있다. 나아가 이러한 어리숙한 몸짓은 때때로 부서져 나온 조각처럼 남게 되는데, 〈Whispers in Fragments〉(2025)은 손에 쥘 수밖에 없는 파편의 무게를 가늠하게 하는 동시에 머뭇거림을 불러낸다. 외부에서 흘러든 빛은 등 뒤로 숨겨진 파편을 비추지 못하고 그림자를 드리우며 바닥 위에 새로운 창을 만든다. 내부에 있으면서도 퍼포머가 선 자리를 외부로 이동시키는 듯한 이중의 화면은, 장막을 사이에 두고 나누어진 안과 밖의 경계로 그를 데려간다.
이 경계 위에서 우리는 다시금 ‘바깥’이라는 공간을 사유할 수 있겠다. 고속 셔터로 연속 촬영한 네 장의 사진 〈Variations in Anonymity〉(2025)는 사회의 무대에서 자신이 선 위치가 미세하게 바뀌는 순간들을 은유한다. 부여받은 규범과 코드(code)의 바깥에서 익명화된 얼굴은 한 개인의 초상을 넘어 사회적 관계 안에서 미세하게 흔들리는 자리를 포착한다. 〈Silent Uproar〉(2025)이 관계의 친밀함과 균열, 유희와 생존이 교차하는 사회의 장면을 자연의 모습 안에서 건져낸다면, 식물원에서 촬영된 온실 속 식물들은 저마다의 방향으로 뻗어 나가지만 통제된 환경에 따라 조건이 고정된 풍경을 보여준다. 〈Keen Strangeness〉(2025)는 사회가 요구하는 조건과 각자가 지닌 이야기를 내뱉으려는 몸짓의 긴장과 충돌 사이에서 재편되는 삶의 여러 양상을 여실히 드러낸다.
압축된 세계의 단편을 모아 독립된 장면으로 각본된 송석우의 사진들은 짧은 시간 안에 응축된 긴장을 드러내듯 하나의 단막극을 이룬다. 이러한 장면들이 전시장 안에서 나란히 이어질 때, 우리는 흩어진 단상들이 서로의 틈을 메우며 형성되는 하나의 무대를 만나게 된다. 창의 안과 밖, 무대의 안과 밖으로부터 밀려난 자리에서 비롯된 고립과 고독에도 불구하고, 이를 거부하고 마주본 서로를 향하는 그들의 몸짓은 슬픈 규범을 지워낸 세계를 기어코 만들고자 한다. 그렇기에 이 단막극은 다른 질서를 모색하고자 하는 의지가 담긴 동작으로 다시 서게 된다. 예술은 주어진 현실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쓰이지 않은 이야기의 장막을 걷어내는 일이라면, 우리에겐 여전히 더 많은 각본된 세계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