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이야기이긴 하지만, 창세기에 나온 도시인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를 떠올려본다. 멸망을 앞두고 있는 도시를 구하기 위해서 아브라함은 신에게 간청한다. 그는 도시를 구원할 수 있는 의인이 있다면 도시를 멸망시키지 말아 달라고 이야기한다. 이때의 조건은 도시 안의 ‘의인’이 있는지 여부였다. 50명에서 시작한 의인의 수는 점차 낮아져 10명까지 내려간다. 누군가는 왜 아브라함의 요청에서 1명까지 내려가지 않았는지 의문을 가질 것이다. 하지만 역으로 이 이야기를 소급해본다면 우리가 하나의 ‘집단’을 이룬다고 생각하는 최소 단위가 10명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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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이라는 숫자를 다시 생각해보자. 곧장 손가락의 모습이 연상되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10이라는 수를 세기 위해서 우리는 무의식중으로 2나 5와 같은 수로 묶음을 지어 계산한다. ‘집단’을 대변한다는 숫자 10을 확인하는 데 그룹을 짓는 것처럼, 집단에서 시작된 ‘사회’에서도 ‘묶음’은 하나의 기본적인 과정이 된다. 그리고 이 ‘묶음’은 사회 시스템으로 까지 이어진다. 일종의 모듈처럼 이들은 쌓이고, 맞추어지고, 다시 묶인다. 무엇인가를 묶는 이 과정은 우리 삶에서 돌이켜보건대 분명 낯설지 않은 것이다. ‘학교’, ‘군대’, ‘회사’, ‘예술가’, ‘우리’. 분류하고 묶는 과정에서 두 개의 작은따옴표(‘’)는 그 대상들에게 소속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특히나 한국 사회에서는 이 시스템에 얼마나 적응을 잘하는지가 하나의 미덕처럼 여겨지기에 ‘ 묶음’ 의 과정에서 개인은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20대 남성으로 사회 시스템 내에서 이러한 과정을 겪은 송석우 작가는 개인과 시스템 사이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간극을 포착한다. ‘묶음’에 가려져 읽히지 않던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정확하게는 초점을 맞추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 방향만 향하고 있는 사회 시스템이라는 거대한 나침반의 주변에서 자석을 가까이하면서 그 방향성에 흔들림을 주고자 한다.

사회의 방향과 빗겨가는 개인의 모습을 드러내는 과정은 작가 본인이 겪은 주관적인 감정에 근간을 두고 있다. 하지만 이 감정에 반응하는 방법으로 그는 하나의 뚜렷한 감정을 필름 표면에 바로 투사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는다. 오히려 필름에 남는 그레인처럼, 감정을 느끼는 과정에서 주변을 둘러싸던 내러티브는 화면에서 덜어지고, 필름에서 떨어진다. 결과적으로 사진에 오롯이 남게 된 것은 인물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화면에서 편하게 ‘한눈’에 들어오는 배경과 다르게, 어딘가 방향이 어긋난 오브제처럼 존재하고 있다. 작가의 감정은 여러 명의 인물로 의인화된 것처럼 보이지만, 이 의인화된 감정은 잘못된 위치에 놓여진 듯 섞이지 못하는 이방인과 같이 우두커니 있을 뿐이다. 작가는 이제 뷰파인더 뒤에서 오브제가 된 감정을 중심으로, 다시 자신을 감싸는 ‘묶음’과 개인의 간극에 대해 바라본다. 이 간극 위에서 그는 연민이나 동정과 같은 또 다른 감정을 필터처럼 덧씌우지 않는다. 다만 개개인이 ‘묶음’의 속에서 겪을 법한 이 간극의 현실을, 그 사이의 어긋나는 감정을 나지막이 직시한다.

송석우 작가는 이 간극들을 하나의 작은 따옴표로 묶지 않는다. 이방인처럼 놓여있을지라도, 개인의 감정이 하나의 ‘묶음’으로 얽히지 않게 배경 앞에 비스듬히 놓는다. 이 경계 위에서 우리는 낯선 화면을 보는 동시에, 낯설지 않은 감정의 기시감을 느낀다. 몇 개의 ‘묶음’을 만든다면 더 빠르고 쉽게 셀 수 있겠지만, 이 전시에서는 여러 개의 ‘묶음’을 짓는 방식으로 10을 읽지 않는다. 10으로 이르기 위해 하나씩 되새기면서 눈과 머리를 바삐 움직여본다. ‘한눈’에 읽히지 않을지언정, 아니 되려 적극적으로 ‘한눈’에 읽는 것을 포기하면서 그의 이번 전시 《Wandering, Wondering》은 ‘집단’이 이루는 사회 시스템이 어긋나는 곳에서 하나씩 수를 읽어보기를 제안한다. 그 과정이 어색해보일지라도, 방향을 헤맬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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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10을 세어보자. 한눈에 읽히기 힘들지라도 묶이지 않는 그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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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러한 추론은 피에르 레비, 권수경 옮김, 『집단지성』, 문학과 지성사, 2002 를 참고했음을 밝힌다.